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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 (흥선대원군 일화)

펄강 2020. 11. 17. 15:44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 그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제22대 조선의 왕 정조에게 배다른 동생이 있었는데, 바로 '은신군'입니다.
후사가 없었던 은신군은 양자를 들이게 되고, 그 양자가 바로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인 것입니다.

 

 

권력의 변방에 있다가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서게된 남연군. 흥선대원군은 남연군의 넷째아들로 이름은 이하응입니다.

 

강진 정약용 유적 다산초당 현판 (추사 김정희의 글씨)

 

이하응은 추사체의 창시자인 김정희를 스승으로 두게 되는데요. 시,서,화에 모두 능한 김정희의 영향을 받아 명석한 두뇌로 정치 경제 사회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비범한 리더로서의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출처: 역서저널그날 시즌3

 

병세가 악화되어 위중했던 조선 제25대 철종.
철종이 승하하고 나면 왕위후계자를 결정할 권한은 신정왕후에게 있었습니다. 신정왕후는 익종의 왕비이자 제24대 헌종의 어머니입니다.

이 시기는 안동김씨 세도 정치기로 말을 안들으면 안동김씨 세력이 역모의 누명을 씌워 처형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원군은 신정왕후에게 접근하여 안동 김씨를 몰아내자는 뜻을 같이하였고, 정조의 조카손자로 후계자 조건을 만족했기 때문에 철종이 돌아가시고 나면 자기 아들을 왕으로 해달라고 청탁하게 됩니다.

이 청탁이 허무맹랑한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흥선군에게는 첫째 아들이 있었습니다. 19살이었던 첫째 아들이 왕위에 즉위하면 성인이기 때문에 신정왕후가 수렴청정이 불가했습니다.
이 때문에 둘째 고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여 수렴청정이 가능하도록 합니다.

결국 이하응의 둘째 아들 이명복이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이 됩니다.


<참고>

나는 왕이 아닌데 아들이 왕이 된 경우
이 때 임금의 친아버지를부르는 말: 대원군

왕족에게 주는 호칭 : 흥선군
흥선군 이하응 + 아들이 왕 = 흥선대원군

1)덕흥대원군 (선조 父)
2)정원대원군 (인조 父)
3)전계대원군 (철종 父)
4) 흥선대원군 (고종 父)

우리나라 역대 대원군 4명중 살아서 대원군이 된 유일한 사람이 흥선대원군이라고 합니다.



※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의 견제를 어떻게 이겨 냈을까?

 

'선을 넘는 녀석들' 흥선대원군의 큰 그림! '파락호' 행세하며 안동 김씨의 경계를 낮추고 기회를

13일 방송된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서는 굴욕은 나의 힘! 흥선대원군의 숨겨진 큰 그림에 대해 공개했다. 설민석은 '와신상담'이라며 "파락호라고 하죠? 건달 행세를 하고 다녀요"라고 흥선

n.news.naver.com


이하응은 야심을 숨기고 파락호 행세했다고 전해집니다.
상갓집에 문을 박차고 들어가 거지마냥 게갈스럽게 음식을 먹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안동김씨의 경계심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 이 내용은 정사가 아니고 소설에 담긴 내용입니다.
흥선대원군 집권기 40년뒤인 1933년 김동인 작가의 소설 [운현궁의 봄]에 실렸습니다.
시간이 꽤 지나서 쓰여진 만큼 실화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고 합니다.

 



대원군의 성품과 관련된 일화

 

이하응은 젊었을 적 기생집에 잘 드나들었습니다. 술집에서 추태를 부리는 이하응을 본 금군 별장 이장렴(종2품 무관)은 이를 말렸습니다.
심지어 “기생집에서 술 마시는 종친을 공경할수 있겠냐”라고 하며 대원군의 뺨을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왕의 아버지가 되어 재회한 대원군과 이장렴.
“지금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냐?”라 묻는 대원군의 말에 이장렴은 “그때처럼 못된 술버릇을 가지고 계시면 어쩔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장렴의 말에 흥선대원군은 “자네가 무서워서 못가겠다.”면서 좋은 인재를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장렴은 평생 흥선대원군의 신복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대원군의 실제성격은 호방하고 긍정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참고 문헌>
선을 넘는 녀석들(http://www.imbc.com/broad/tv/ent/cross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