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컨텐츠/역사

명성황후와 고종의 사랑과 전쟁? (관상가 박유붕과 영보당 이씨)

펄강 2020. 11. 18. 11:37

고종은 나이 12살때 즉위하여 신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나, 실세는 아버지인 대원군이었습니다.
결국 신정왕후는 2년 2개월만에 수렴청정을 마무리하고 대원군에게 권력을 넘기게 됩니다.

대원군에게 권력이 넘어간 이후, 어린 나이였던 고종에게 왕실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공부하기 싫어하던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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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6대 왕 고종은 아직 왕으로서 배워야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부만 했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종이 강독시간에 공부는 안하고 새집을 보고 있었던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에 신하들이 선대의 ‘정조’대왕을 본받으라거나 또는 청나라의 ‘동치제’와 비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기 때문인지 조선 최초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의 개념을 만든 분이 바로 고종이라고 전해집니다.

 


고종의 사랑과 결혼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결혼상대도 직접 골랐는데요. 이 것이 훗날 자신에게 어떤 문제를 불러 일으킬지 아마 그때는 몰랐던것 같습니다.

 

 


사실 고종에게는 다른 약혼자가 있었는데, 바로 안동 김씨 가문의 김병문이라는 사람의 딸과 이미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왕이 되자 신정왕후와 결탁을 해서 일방적으로 약혼 파기했습니다.

 

권오창 화백의 명성황후 영정

 


그리고 여흥 민씨의 명성왕후를 간택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인현왕후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며, 둘째로 세도정치와 엮일 위험이 없이 가족 없는 혈혈단신이었기때문입니다.

 

 


한편, 그 유명한 “왕이될 상이다”라는 말을 정말로 했던 사람이 있는데 관상가 박유붕입니다. 어느날 운현궁에서 놀고있는 어린 고종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는데요. 실제 고종이 왕이 되자, 흥선대원군은 박유붕을 책사로 발탁하였고, 정3품 당상관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명성황후를 간택하는 과정에서도 관상가 박유붕이 개입했습니다. 그에게 의견을 물으니 절대 안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계속 되는 간언에 대원군이 역정을 내게되고 그 이후 외면 받게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와서 보면 모두 맞는 말이었네요.

 

황현의 저술을 엮은 『매천집(梅泉集)』

 


한편, 황현이 지은 [매천야록]에 의하면 명성왕후와 고종의 사이는 이성간의 사랑보다는 정치적 조력자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종은 ‘영보당 이씨’라는 궁녀를 사랑했는데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명성왕후와 결혼했지만 결국 이 궁녀가 아들을 낳게 됩니다. 심지어 궁녀의 자식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이후 다행스럽게도 명성왕후가 아들을 임신하게 되었으나, 첫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까지 사망하며 한 여자로서의 명성왕후는 행복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참고 문헌>
선을 넘는 녀석들(http://www.imbc.com/broad/tv/ent/cross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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