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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과 고부농민봉기

펄강 2020. 12. 1. 09:50

안녕하세요.
오늘은 먼저 우리가 굉장히 많이 들어봄직한 전래민요부터 소개드릴까 합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 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이 전래민요는 조선말 동학 농민 운동의 영웅 전봉준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민요에 얽힌 설이 두가지 있는데요.

1. ‘파랑새=팔왕새’ 라고 하여 팔(八)+왕(王)의 한자를 합쳐 전봉준의 전(全)자를 이룬다는 설
(파랑새는 그를 따르는 민중,
동학군은 도적으로 여겨 녹두장군 전봉준을 따르지 말라고 설득하는 내용)

2. 파랑새=외세
녹두=전봉준
청포=민중
(동학농민혁명의 말로를 노래하는 내용)

아무래도 둘 중에서 두번째 설에 무게를 두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 전봉준이 녹두장군이라고 불리는 이유

전봉준은 어릴 때부터 체구가 작고 약했는데요.
이 때문에 '녹두'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녹두장군이라고 별명이 붙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작고 약했던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의 주동자가 되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

1884년

충청감사가 고종을 만나는 자리에서 조병갑을 지방 사또로 추천합니다. 하지만 조병갑은 의외로(?) 발령 받을 때마다 부임 거부하는데요. 그 이유는 부임지가 경상, 강원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척박한 땅으로 수탈할게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곡창지대인 김해로 부인했지만 욕심이 끝이없얶고, 호남평야 최고의 노른자땅 고부 군수로 부임 받게됩니다.

1893년

흉년이 들고 전염병까지 겹쳐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 거기에 가혹하게 부과된 만석보의 물세.
고부 군수에게 이 비참한 현실을 알리고자 100여명의 농민들이 고부 관아에 가서 뜻을 전달합니다. 그 중 농민들의 선봉에 있었던건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이었습니다.
하지만, 몽둥이를 휘두르며 농민들을 쫓아낸 조병갑.
전창혁은 주종자란 이유로 고문까지 당해 죽음을 맞이 하게 됩니다.
이일로 전봉준은 녹두장군의 길을 택합니다.

1894년: 고부농민봉기
탐관오리 조병갑을 몰아내기위해 전봉준과 농민들은 고부에서 민란을 일으킵니다.
고부관아를 점령한 농민들이 제일 먼저 한일은 곡식 나눠주는 일이었는데요. 이 외에도 억울한 죄인을 석방하고, 만석보도 파괴합니다.

<사발통문>

 

 


고부민란때 주모자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위해 사발통문을 사용하는데요. 이름을 빙 둘러가며 적어 누구 이름이 하나 앞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조정에서는 조병갑을 파면하고 새로운 군수와 사건 조사를 위한 관리를 보내게 됩니다.
‘박원명’이 신임군수로 부임하여 사태를 잘 수습하는듯 했으나, 관리로 임명된 안핵사 이용태가 또 한번 문제를 일으킵니다. 책임을 농민에게 돌리고 찾아내 가두는 등 다시 횡포을 부리는 데요. 이로써 다시한번 봉기가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