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컨텐츠/역사

동학농민운동 전개과정 - 1차 봉기 (백산집회/황토현전투)

펄강 2020. 12. 2. 08:49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부 민란을 시발점으로 하여 그 이후의 동학농민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고부민란

녹두장군 전봉준과 고부농민봉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먼저 우리가 굉장히 많이 들어봄직한 전래민요부터 소개드릴까 합니다.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 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 이 전래민

wlswn1288.tistory.com



고부 민란이 마무리 되면서 부임한 안핵사 이용태.
하지만 그 역시도 횡포를 이어가고, 이에 따라 다시한번 봉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동학농민혁명>

 

1차 봉기

 

1894. 1.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농민혁명 발발

1894. 3.
전라도 고창군 무장에서 4000여명의 농민군 집결



백산대회
중앙 지휘소가 설치되고, 민중들이 모여 4대 강령을 내세우며 진정한 혁명군으로서 발돋움

[백산집회(백산대회) 4대격문]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른 것은 그 본뜻이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에게 고통을 받은 민중들과
관찰사와 수령의 밑에 굴욕을 받는 낮은 벼슬아치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을 것이니 조금도 주저치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1. 함부로 사람을 죽이거나 가축을 죽이지 말라! 
2. 충과 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
3. 왜놈을 몰아내고, 나라를 깨끗이 하라! 
4. 군사를 몰아 서울로 쳐들어가 권세있는 자들을 모두 박멸하라!



황토현 전투 (동학농민군 vs 관군의 최초 전투)

 

정읍 황토현


경제, 군사, 정치의 중심인 전라 감영이 있는 전주로 향한 동학 농민군.
이에 심각성을 느끼고 전라도에서 약 1,500명의 연합부대로 이뤄진 관군이 진압을 위해 남하하게 됩니다.
황토현에 매복한 동학농민군, 이 곳에서 관군과 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황토현 전적지는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었으며,

또 올라가는 길도 발이 푹푹빠져 적들이 쉽게 오르기 어려웠습니다.
지리적 특징을 이용하여 동학농민군은 결국 전투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승리를 거머쥡니다!

 

<참고: 갑오동학농민혁명기념탑>

 

황토현 전적지에는 동학농민혁명의 뜻을 기려 국가에서 처음 만든 기념탑이 있습니다.


“제폭구민 보국안민”
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한다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


동학농민운동의 슬로건인 이 말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황룡촌 전투에서도 거듭 관군을 상대로 승리를 이뤄내며 전주로 향한 동학농민군.

이미 동학농민군의 세력이 전주성 안에 있었고
위장해서 들어간 농민군과 내통하던 향리들에 의해 성문이 열리며 그렇게 전주성을 쉽게 점령합니다.

반봉건, 반부패 투쟁이었던 1차 동학농민혁명
다음번에는 2차 동학 농민혁명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선을 넘는 녀석들(http://www.imbc.com/broad/tv/ent/cross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