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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 혁명의 원인 (3.15 부정선거의 만행에 대해서)

펄강 2020. 12. 9. 17:02

1956년 대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한번 당선된 이후로 딱 4년 뒤인 1960년, 다시한번 대통령 선거를 치루게 됩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후보는 다시한번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 그리고 민주당의 장면이 그대로 다시 출마했습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만 바뀌어 조병옥이 출마합니다.

그런데 다시한번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3대 대선때와 마찬가지로 또 사망한 것입니다. 지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야당 대통령 후보때문에 결국 이승만은 당선이 확실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유명한 3.15 부정선거가 이루어집니다. 이승만은 당선이 확실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아래 포스팅에 설명하였듯이 이승만 대통령이 고령의 나이로 여당에서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 위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췌개헌/사사오입개헌 - 이승만 독재정부 개헌 과정부터 대선까지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시작점이었던 이승만 정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왜 독재정부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요? 여러가지 논란이 많았던 이승만 정부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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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의 승리를 위해 ‘최인규 내무부장관’이 내린 부정선거 행동지침은 정말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3.15 부정선거 행동지침 ◆

1. 3~9인조 공개투표

 
마을마다 3~9명씩 짝을 지어 기표하는데,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 후 자유당 선거위원의 검사를 거쳐 투표하였습니다.

2. 완장부대 동원
원칙적으로 투표당일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원칙을 어기고 자유당 측 유권자들에게 자유당의 완장을 착용시키고 야당 성향의 유권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였습니다.

3. 4할 사전투표
총 유권자의 40%에 해당하는 자유당 표를 미리 투표함에 넣어두었습니다.

4. 샌드위치표
투표지 100장중 맨윗장과 아랫장만 여당 이기붕의 표로 덧씌운 뒤에 100장 모두 이기붕 표로 집계하는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

5. 피아노표


개표 도중 야당 표가 많이 나올 경우 인주를 찍어 투표용지에 연주(?)하였다고 해서 ‘피아노표’라고 합니다. 모두 무효표로 만드는 작전이었습니다.

6. 올빼미표
개표장의 불을 끄고 표를 바꿔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모지역구에서는 야당 후보의 표가 달랑 한표만 나와 결국 여당 후보의 투표용지를 일부 폐기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또 유권자보다 투표수가 더 많은 지역구도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이런식으로 자행되었다는 곳이 놀랍습니다.

이런식으로 결국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이 당선됩니다.

노골적인 부정선거에 시민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데요. 결국 마산에서 3.15 마산 시위 발발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3.15 마산 시위에 나섰던 김주열 열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 김주열 열사의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가겠습니다.


<참고 문헌>
선을 넘는 녀석들(http://www.imbc.com/broad/tv/ent/cross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