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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와 고려대생 피습사건- 4.19혁명의 도화선

펄강 2020. 12. 15. 19:59

안녕하세요.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3.15 부정선거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이 부정선거로 마산에서 시위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포스팅 참조해주세요~

 

4 19 혁명의 원인 (3.15 부정선거의 만행에 대해서)

1956년 대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한번 당선된 이후로 딱 4년 뒤인 1960년, 다시한번 대통령 선거를 치루게 됩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후보는 다시한번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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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어서 마산시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후에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 마산시위에 참가하게 된 김주열 ◆

 

 


남원 출신의 17세 ‘김주열’은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지원하였는데, 그 합격자 발표일이 1960년 3월 16일이었습니다. 바로 부정선거 하루뒤였죠. 김주열은 마산상고 합격 여부를 확인하기위해 마산으로 향했습니다.
당시는 상고 진학이 은행 취업의 지름길과 같았으며, 경상도 출신 어머니도 이모할머니댁에 머무를 수 있는 마산행을 권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주열의 이모할머니는 열정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김주열은 시위중인 모습을 보고 형과 함께 마산 시내로 나갔습니다.


◆ 김주열의 실종 ◆


마산시내로 나갔던 김주열은 형과 서로 떨어져 다니게 되는데, 그 이후 행방불명이 됩니다. 마산 시내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사라진지 28일째, 사라진 아들을 찾으러 김주열의 어머니가 마산에 도착합니다. 그때 '경찰이 저수지에 시신을 투기했다'라는 제보가 들어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게 되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마산 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소년의 시신이 발견된 것입니다.

 

 


시신은 한 어부가 처음 발견하였는데, 이후 부산일보의 허종 기자에 의해서 신문에 대서특필 됩니다.

사진을 본 전국의 국민들이 분노하였고, 특히 우리네 어머니들이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마산 2차 의거가 시작됩니다.

겉잡을 수 없이 커진 국민들의 목소리에 정부에서는 최대한 빨리 장례를 치르려하였으나,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란 어머니는 끝까지 시신을 안받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지만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자녀들을 잃은 어머니 여러분!
우리 다같이 눈물을 거둡시다.
자식들이 뿌린 따뜻한 선혈이 남긴 이 민족의 넋이 헛되지 않도록
내일의 새로운 세대를 뒷받침하는 이 나라의 어머니로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밉시다." 


-김주열 어머니 권찬주 여사의 ‘글월’ 중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4.19 혁명이 일어납니다. 평범한 한 학생의 어이없는 죽음이 나라를 뒤집어 놓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려대생 피습사건

 

 

 


4.19혁명이 일어나기 하루 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는데요.

“민주 역적 몰아내자”라는 현수막을 걸고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며 부정선거 해명연행 학생 석방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평화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던 고려대 학생들 앞에 갑자기 괴한들이 나타납니다. 무장한 깡패들이 무자비하게 학생들을 폭행하였는데요. 그 깡패들이 바로 ‘대한반공청년단입니다.

 

*대한반공청년단: 1960년 자유당이 3.15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만든 선거단체

 

이 때 고대생 한명이 피살 당했다는 기사가 동아일보에서 나옵니다. 결국 이 것은 오보로 밝혀졌지만 4.19혁명의 방아쇠를 당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19 혁명

 

 

 

 

이제까지 살펴본 여러가지 원인들로 인해 본격적인 4.19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당시 시위에 참가하였던 것입니다. 4.19혁명으로 언니, 오빠들이 무차별 진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총부리를 대지말라”고 외쳤다고 하는데, 그 때의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보면서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역사로 그냥 머리로만 외우던 것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보면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반독재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우리 역사의 잊혀지지 않을 한 페이지입니다. 4.19혁명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참고>
선을 넘는 녀석들(http://www.imbc.com/broad/tv/ent/cross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