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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 일화 - 대한독립선언서와 광복회, 그리고 청산리 대첩까지

펄강 2020. 12. 28. 18:46

안녕하세요.
배우 송일국김을동의 선조로 알려진 김좌진 장군. 오늘은 김좌진 장군의 업적과 일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만주로 간 김좌진


김좌진은 경술국치(1910년) 이후에 광복회에 입단하게 됩니다.


▶광복회란?
국권피탈 이후부터 광복까지 활동하며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가단체


광복회에서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을 만나게 되는데요. 박상진은 군대 양성을 위해 김좌진을 만주로 파견합니다.
그렇게 김좌진은 만주로 향하게 됩니다.

▶만주의 위치는?


백두산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두만강과 백두산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압록강. 그 위에 서간도북간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위 사진의 파란색 부분을 모두 만주라고 부릅니다.

 

 

체포된 광복회 회원들


만주에 도착한 김좌진 장군. 그때 조국에서 나쁜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바로 자신이 활동했던 광복회가 일제에 붙잡혀 대부분의 광복회 회원들이 체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좌진은 붙잡혀간 박상진의 유지를 이어받아 광복회의 꿈을 이루고자 다시 한번 굳게 다집합니다.

 

 

역사 속 첫 이름을 남기게 된 김좌진 장군

 

만주에서 독립투사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데 이미 만주에는 김좌진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탑골공원에서 일본 순사들에게 포위당한 김좌진은 이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그대로 담을 넘어 도주합니다. 또한, 말도 짊어지고 뛸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런 김좌진이 독립투사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인지도는 있었으나 아직까지 거물급의 독립투사는 아니었던 당시의 김좌진.
독립투사들이 김좌진을 어디론가 데려가서 한장의 문서를 보여주는데요. 그것이 바로 38인의 서명이 담긴 대한독립선언서였습니다.

 

대한독립선언서 (1918년)


1776년 발표된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을 하나로 규합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혁명은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명분이 되어줬던 것이 바로 '대한독립선언서'입니다.

여기에 서명하는 순간 평생 일본군에게 쫓기게 되고 가족의 안전마저도 보장할 수 없게됩니다. 김좌진에게도 서명하기 직전까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지만, 독립에 남은 인생을 바칠 각오를 한 김좌진은 당연하게 서명에 응합니다.

*서명한 인물 (김좌진 장군 포함 총 39명)


무장투쟁을 외쳤던 신채호, 신민회를 조직한 이동녕, 유학자이자 계몽운동가 박은식, 중국과 연계하여 독립운동을 펼친 신규식 등 독립운동사를 빛낸 위대한 영웅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김좌진 장군까지 포함되며 독립운동사에 이름을 처음으로 알리게됩니다.

 

 

"하늘의 뜻과 사람의 도리와 정의법리에 비추어
만국의 입증으로 합방무효를 선포하며
그들은 죄악을 응징하며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노라

슬프도다 일보의 무력과 재앙이여!
작게 징계하고 크게 타이름이 너희의 복이니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고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할지어다.

정의는 무적의 칼이니 이로써 하늘에 거스르는 악마와
나라를 도적질하는 적을 한손으로 무찌르라

이로써 2천만 백성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니
궐기하라 독립군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대한독립선언서 中

 

무장투쟁 노선을 걷고자 한 만주의 독립투사들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선언서입니다.

이후 김좌진 장군은 북로군정서의 총 사령관으로 추대되어 만주에서 장군이 됩니다.
1920년 북로군정서에 사관양성소를 설치하여 290여명의 훈련생을 교육하기도 합니다.
겨우 6~7개월만에 훈련을 모두 끝마치고, 이들은 바로 한달뒤 청산리 대첩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참고>
선을 넘는 녀석들(http://www.imbc.com/broad/tv/ent/crossline/